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루마니아 왕국 (문단 편집) === 독립 과정 === 근대에 이르러, 루마니아는 인접한 [[오스트리아 제국]][* 오스트리아 제국 산하 [[트란실바니아 대공국]]은 본래 [[헝가리 왕국]] 영토로 기득권층은 [[헝가리인]], [[세케이인]], [[독일인]]이었으나 [[루마니아인]] 농노 인구가 절반을 넘어갔다. 또한 [[부코비나 공국]]은 원래 [[몰다비아 공국]]의 영토였다.] 덕분에 발칸 국가들 중에서 가장 일찍 서구화된 사상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. 그 결과 [[1848년 혁명]]의 물결 속에서 분열되어 반목하던 [[독일 연방]]과 [[이탈리아 반도]]가 [[독일 통일|통]][[이탈리아 통일|일]]을 지향하는 대세에 동참해 [[몰다비아 공국]]과 [[왈라키아 공국]] 역시 통일을 도모하기 시작하였고, 11년이 지난 1859년, [[오스만 제국]]에게 [[러시아 제국]]이 패한 [[크림 전쟁]]의 뒷처리 과정에서 왈라키아와 몰다비아는 [[알렉산드루 이오안 쿠자]]를 공동 군주로 모시는 [[동군연합]]을 이루어 [[몰다비아 왈라키아 연합공국]]이 탄생하였다. 이후 1862년 루마니아 공국으로 재편되었다. 쿠자는 열악한 상태의 루마니아를 근대화하기 위한 각종 개혁을 실시하였으나 토지 개혁에서 발목이 붙잡혀 1866년 쿠데타로 축출되었다. 축출된 쿠자의 뒤를 이어 [[카롤 1세]][* [[독일 통일|독일을 통일]]한 [[프로이센 왕국]] [[호엔촐레른 가문]]의 슈바벤계 분파다. 즉, 독일 태생 국왕으로 이후 루마니아의 친 독일적 성향에 큰 영향을 끼쳤다.]가 다음 군주로 추대되었다. 1877년 러시아 제국과 오스만 제국 사이에 제11차 [[러시아-튀르크 전쟁]]이 발발하자 카롤은 루마니아의 명목상 종주국이던 오스만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러시아 편을 들어 참전하여 승전국이 되었다. 그리고 1878년 같은 오스만의 속국이던 [[세르비아 공국#s-2]], [[몬테네그로 공국]]과 함께 독립을 얻었고 [[도나우강]] 하류의 북[[도브루자]]를 전리품으로 얻었다. 독립한 루마니아는 화약고 같은 발칸 정세 속에서 자연스럽게 전쟁에 뛰어들었다. 제1차 [[발칸 전쟁]]으로 얻은 [[마케도니아]] 지역을 둘러싼 세르비아와 불가리아의 갈등이 폭발, 제2차 발칸 전쟁으로 비화하자 불가리아와의 영토 분쟁 지역인 남도브루자를 노린 루마니아는 세르비아와 동맹을 맺고 불가리아의 뒤통수를 날렸다. 결국 패전한 불가리아는 루마니아에게 남[[도브루자]][* 한국어 위키백과의 [[http://ko.wikipedia.org/wiki/도브루자|관련 문서]], 영어 위키백과의 [[http://en.wikipedia.org/wiki/Dobruja|관련 문서]] 참조.]를 할양하는 굴욕을 당해야 했다. 이때 루마니아는 큰 체급[* 다른 발칸 국가들과 비교할 때 1914년 기준 몬테네그로가 50만 명, 알바니아가 80만 명, 세르비아와 그리스가 450만 명, 불가리아가 480만 명일 때 루마니아는 770만 명으로 발칸 국가들 중에서 가장 인구가 많았다.]과 카롤 치세 대의 국력 신장으로 발칸 반도에서는 거의 프랑스급 국가로 인식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